“비상선언” 리뷰: 한국형 재난 영화의 가능성과 한계
2022년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은 항공기 내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설정을 통해 재난 상황 속 인간 군상과 시스템의 균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화려한 출연진과 스케일 있는 연출로 주목받았지만, 평가와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상선언’이 보여준 한국형 재난 영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드러난 한계를 정리해 봅니다.
재난 스릴러로서의 구조와 시도
‘비상선언’은 항공 재난과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설정하면서, 관객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좁은 비행기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초기에는 잘 짜인 몰입 구조를 보여줍니다.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지상에서의 정부 대응이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구성은 재난의 다층적인 전개를 보여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송강호가 연기한 형사 인호와 이병헌이 연기한 탑승객 재혁의 서사는 감정선을 유지하며, 인물 간 대립과 협력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을 잡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선이 과잉되거나 분산되는 장면이 많아지며 긴장감이 점차 흐려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한국 재난 영화가 할 수 있는 다층적 구조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이를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감정과 메시지: 과잉인가, 공감인가?
‘비상선언’의 중요한 축 중 하나는 희생과 연대입니다. 팬데믹이라는 설정은 단순한 재난보다 인간 본성, 공포,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를 조명하기에 적절합니다. 영화는 극 중 항공기 탑승객들의 두려움과 절망, 정부의 판단과 갈등 등을 통해 여러 감정선을 교차시킵니다.
특히 감동 포인트로 의도된 장면들—예컨대,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들의 결단—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휴머니즘 코드입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몰아가는 연출로 인해 진정성보다 연출된 눈물이 먼저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영화가 담고자 한 메시지, 즉 공공의 위기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분명 유효하지만, 그 전달 방식에서 설정의 개연성과 감정의 진폭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비판도 공존합니다. 감동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현실성을 희생한 느낌이 드는 대목들이 아쉬움을 남깁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어디까지 왔나?
‘비상선언’은 제작비 약 3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대작으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CG와 항공기 세트, 실제처럼 구성된 바이러스 확산 상황 등은 상당한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 산업의 스케일 확장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항공기 내부 세트는 실제 기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일부 장면에서는 할리우드급 연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몰입도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로서의 쾌감이나 긴장 유지 능력은 서사와 연출의 균형 미흡으로 인해 일관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비상선언’은 기술적으로는 분명 진일보한 작품이지만, 장르적 완성도와 서사적 결집력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즉, 스펙타클과 감정의 균형, 현실성과 영화적 상징성의 조화라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핵심 과제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비상선언’은 한국 재난 영화가 기술적으로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음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그러나 서사 구조와 감정 전달 방식에서는 아직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이 작품은 분명 하나의 도전이었으며, 그 가능성과 한계 모두가 다음 영화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